철학자들이 인간 존재를 규명해 나감에 있어 머리를 중요시하는 그룹과 배를 중요시하는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머리를 중요시하는 철학자들은 '동물들도 모두 배가 있지만, 사유하지 못하므로 인간은 더 고차원의 존재다'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배를 중요시 하는 철학자들은 '일단 굶어보라, 그러면 먹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고, 또 산해진미를 배부르게 먹고 나면 철학적 사유란 것이 불가능하기 마련이다'라고 응수하며 인간이 지닌 정신적 에너지의 기원을 무참히 폄하하기도 한다.
배는 겉으로 보기엔 푹 파인 배꼽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심하고 별 특징 없는 부위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온갖 장기가 위치해 있고,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 육체의 가장 중요한 곳이랄 수 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인간이 해내는 무수한 활동은 21세기에 걸친 현대 문명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또 한편 굶주림은 실패와 빈곤을 투영하며 식욕과 성욕, 각종 탐욕 등 인간의 삶이 가진 어두운 면을 상징하기도 한다.
복부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논함에 있어서도 빠질 수 없는 부위다. 구석기시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거대한 가슴크기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가슴 보다 더 삐져나온 복부는 다산을 중요시했던 시대상을 반영한다.
시간이 흘러 그리스인들은 조화와 균형미를 선호하고 극단적인 모든 것들을 경멸했는데, 이상적인 몸 역시 마찬가지여서, 노년의 소크라테스도 황금비에서 벗어난 수치의 뱃살을 빼기 위해 정원에서 조깅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몇해전 국내에서 실시된 대규모 조사에서도 20대 여성들이 신체 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위로 얼굴보다 아랫배를 꼽았다고 밝혀졌다. 가장 살이 찌기 쉬우면서도 빼기는 어려운 것이 뱃살이기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뱃살과 치열한 전투 중일 것이다.
아름다운 복부에서 배꼽 말고는 별 특징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매력적인 복부를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들이 요구된다. 특히, 여성의 복부를 보면 명치에서 배꼽까지 약간 함몰된 중심선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데 이를 백선(linea alba)이라고 한다.
우리 몸의 좌우 근육이 만나는 이 지점은 피하지방층이 적을수록 더 뚜렷이, 매혹적으로 보인다. 복부의 측면은 타이트해야 하며 가운데 복부는 오히려 여유 있게 도톰하여야 여성적이다. 갈비뼈와 골반 사이의 허리 옆선은 깊게 들어갈수록 허리가 가늘어 보여 보기 좋으며, 배꼽은 세로방향으로 가늘게 보여야 이상적이다. 남성의 경우 복직근을 중심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식스팩이 '몸짱'의 상징이 된 것도 오래 전 일이다.
필자에게는 여성들로부터 가끔 '갈비뼈를 잘라내어 배와 허리를 가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문의가 오기도 한다. 마른 모델들이 더욱 볼륨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시도한다는 소문이 발단이 된 듯하다.
하지만 실제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내부 장기를 보호해야 하므로 불가능하며, 또 권장하고 싶지도 않은 방법이다. 군살 없이 매끈한 복부를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집념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필자가 아름다운 복부의 조건으로 '지나친 욕심을 배제해야 한다'고 꼭 덧붙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